뿌리깊은 나무를 다시 보다가...
문득, 채널을 돌리다 한글날을 맞아 케이블방송에서 하는 “뿌리깊은 나무”에 채널이 멈췄다.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어서 2년 전을 회상하며 몰입하고 있었다.
19회 이도와 정기준의 토론장면.
밀본의 본원 정기준(윤제문)의 정체가 드러나고 이도(한석규)와 대립하는 장면이었다.
다시 보니 처음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기득권인 사대부의 욕망과 부패를 견제하기 위해 백성에게 글을 가르치려는 이도와 글을 알게 되어 지혜를 가진 백성의 더욱 거대한 욕망이 질서와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 우려되는 정기준의 토론.
이도 : 너희 사대부는 결국 부패하게 될 것이다. 사대부들은 그들의 능력만큼 욕망을 갖게 될 것이고 또한 기득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득권을 세습하려 할 것이다. 왜? 사람이니까. 이해한다. 내기를 해도 좋다. 사대부는 훗날 고려후기 너희들의 손으로 깨부순 그 더러운 음서제도를 부활시키고 고인 물처럼 냄새를 피우며 썩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대부가 그리 되지 않도록 그 욕망을 누가 견제할 수 있겠느냐? 임금은 늘 견제당해야 하는 존재이기에 한계가 있다. 하여, 나는 백성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하게 하려 한다. 백성이 힘을 가지고 권력을 나누게 되는 새로운 균형, 새로운 질서, 새로운 조화다. 해서, 나의 글자가 그런 새로운 세상의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기준 : 사대부의 욕망이라… 허면, 백성의 욕망은?
백성의 들끓는 거대한 욕망, 그걸 만나면 공포에 질리게 된다. 왜? 그 욕망들이 모두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 왜? 그 욕망들이 모두 한꺼번에 풀어지면 세상은 지옥이 될 테니까. 그것을 제대로 만난 것은 바로 진시황이다. 그는 강력한 법률로 천하를 다스리려 했다. 하지만 그걸로 되지 않아. 해서, 공자와 맹자가 필요한 것이고 또 주자가 나온 것이다. 무섭고 거대한 백성의 욕망을 다스리기 위해. 서역 대진국이 기리사독교를 국교로 삼은 것도, 삼한과 고려가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것도 그 욕망 때문이었어. 불교도, 유학도, 서역의 기리사독도 모두 이름만 달리했을 뿐 욕망통제체계에 다름 아니었다. 헌데, 너의 글자는 그 욕망통제체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지옥문을 열고 있는 것이야.
이도 : 그것을 어찌 지옥이라고만 하느냐? 백성을 글을 배워 삼강을 알고 오륜을 알게 되면, 사람의 도리를 알고 성리학적 이상에 더 가까이 갈 수가 있다. 그것이 지옥이냐?
기준 : 백성이 글을 알면 읽게 되고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즐거움을 알게 되면 결국 그들은 지혜를 갖게 된다. 누구나 지혜를 갖게 되면 쓰고 싶어진다. 무엇을 위해 쓰겠는가? 욕망이다.
이도 : 그것이 왜 지옥이냔 말이다?
기준 : 모르겠는가? 그들의 욕망은 결국 정치를 향하게 되어 있어. 국가의 정책에 관여하려 들테고 나아가서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려 들 것이다.
이도 :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뽑는다? (헛웃음) 그것이 네가 말하는 지옥이냐?
기준 : 이도!!! 동서고금에 그런 무책임한 제도가 어찌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정치는 책임이다. 유사이래 정치의 본질은 한번도 바뀐 적이 없어. 정치는 오직 책임이야. 그런데 그들이 그들의 지도자를 뽑는다? 허면, 그 지도자가 실정을 한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나? 그 지도자를 뽑은 백성을 모두 죽여야 하나? (중략)
1. 예로부터 정치의 본질은 책임인데, 현재 대한민국 정치인 중 본질에 충실한 사람이 거의 없구나.
2. 변화를 가장 두려워하는 세력은 최고권력자가 아닌 기득권이며, 목숨 걸고 막으려 하고, 썩는구나.
3. 능력만큼 욕망과 기득권을 가지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현재는 능력보다 더 큰 욕망과 기득권을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구나.
4. 지도자가 실정을 하면 누가 책임져야 하나?
5. 과거든, 현재든 통제체제의 유무를 떠나 모든 책임은 백성이 고통이라는 이름으로 지고 있구나.